2026년 3월 29일 대흥교회 주일/가정예배
1. 회개기도 -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지기를 기도합시다.
2. 사도신경 고백
3. 찬송 – 141장(호산나 호산나)
4. 말씀읽기 - 요한복음 12:14-15
5. 설교
제목 : 나귀로 헌신하겠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인 이유는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길에 카펫처럼 깔며 예수님을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종려나무가지는 승리를 상징합니다. 왕이나 장군이 전쟁에서 이기고 개선할 때 사람들이 흔들던 나뭇가지입니다. 종려 가지를 흔들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왕이 되기를 소망했음을 알려줍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을 지배할 왕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호산나 외쳤습니다. 호산나란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로마에 압제를 당했습니다. 대제국인 로마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등장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사건으로 백성들의 먹을거리를 해결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물 위를 걷고 풍랑을 잠잠케 했습니다. 이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왕이 되면 나라와 백성들이 구원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호산나 이제 구원하소서 외치며 종려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엄청난 소란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전체가 들썩였어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던 제자들은 백성들의 격한 환영을 받으며 으쓱했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존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누구죠?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온 어린 나귀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말을 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호산나 외침에 제격인 동물은 말이었습니다. 말을 타면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위풍당당하죠. 말 그대로 높아진 거예요. 반면에 나귀는요. 높지 않습니다. 그것도 어린 나귀입니다. 걸어가는 거랑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무도 나귀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셨다 이 정도로 언급되었을 것이예요.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뒤에 나귀가 어떻게 되었는 지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호산나 외치는 소리와 종려가지가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조용히 나귀는 자신의 소임을 다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나귀만 신실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나귀만 온전히 헌신했다는 거예요. 나귀는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인 예수님을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던 제자들과 호산나 외치던 사람들에 비하면 존재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당하게 예수님의 뒤를 따르던 제자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나요? 그 중 하나인 가룟 유다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 버렸습니다. 인신매매했습니다. 수제자라고 하며 죽을지언정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요? 꽁무니를 뺐죠. 다 도망갔습니다. 또한 자기 겉옷을 펼쳐서 레드카펫을 깔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목소리 높였던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의 화려한 순간을 만들었던 자들 모두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다만 나귀만이 신실했습니다. 말도 못하고 구원과도 상관없는 나귀입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존재가 소멸되는 나귀입니다. 그런 나귀는 예수님께 신실했습니다. 결국 나귀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존재 자체로 으스대던 사람들은 부끄럽게 했습니다.
이 나귀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사건에서 보여지는 반전의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마땅히 큰 일을 감당해야 할 자들은 전부 배신을 했습니다. 오히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길에 동참했습니다. 다 나귀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구레네 출신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일이 있어서 예루살렘에 와 있었고 사형집행이 있다고 하니 구경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쇠약해진 몸으로 나무 형틀을 제대로 들고 가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어디 있었나요? 대부분 뱃사람들입니다. 몸이 튼튼하고 건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아무도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지 않았습니다. 호산나 외쳤던 사람들도 조롱하고 혐오했을 뿐 1미터도 돕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로마 군병들은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주님의 고난의 동참했습니다. 주님을 도왔습니다.
빌라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예루살렘 총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위협에 굴복하여 예수님께 십자가 형을 내리고 집행한 자로 오늘까지도 욕을 먹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로마 총독으로 분명히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죄다! 그로 인해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또한 십자가 형벌을 함께 받던 두 강도 중 하나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위로했습니다. 십자가 형벌은 중죄인에게 가해지는 형벌이었습니다. 손과 발에 못을 박아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형벌입니다. 그래서 많은 죄수들은 십자가 위에서 온갖 저주와 욕을 퍼부었습니다. 고통이 너무 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위로한 제자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외롭게 방치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 이전에 호산나 외쳤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수님을 위로하시기 위해 한편 강도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강도는 십자가 위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 저주와 욕을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당시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소원했습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구원의 사명을 다시 강하게 주님께 각인시켰을 것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입니다. 계산에 들어있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강도였습니다. 중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사명을 감당하시고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돌아가셨을 때 형벌을 집행하던 로마의 백부장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백했습니다. 제자들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이방인 로마 백부장입니다. 유대인들을 무시하고 조롱해야 할 백부장이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의 입에서 믿음의 고백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례했습니다. 제자들은요? 다 도망갔죠. 호산나 외쳤던 사람들은요? 저주를 쏟아 부었습니다. 아무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장례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나섰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회의 지위를 다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무덤을 준비하고 주님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죠. 마땅히 고난에 동참하며 십자가의 길을 손잡고 걸어가야 했던 제자들, 사역의 주인공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 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배신했습니다. 예수님께 호산나 외쳤던 지지자들, 정말 예수님을 왕으로 만들고 싶었던 킹메이커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조롱하고 저주했습니다. 반면에 구레네 시몬, 로마총독 빌라도, 한 편 강도, 로마 백부장,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주역도 아니고 조연도 아니고 그저 엑스트라에 불과했는 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함께 서서 고통을 나누며 헌신했습니다. 환호성 속에서 묵묵히 주님을 등에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나귀처럼 헌신했습니다.
바로 이런 자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 은혜의 일들이 이 땅에 일어난 것입니다. 주역이라고 외치고, 아니면 조연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며 자신이 주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내가 가장 잘 믿는다고 내가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결국 주님을 향해 등을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지극히 작고 소외받은 사람들, 능력이 없는 사람들, 못난 사람들 바로 그들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길을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귀가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것도 어린 나귀가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것이라고 장담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자가 아니라, 그저 묵묵히 주님을 태우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은 유명한 자들이 아닙니다. 무명의 사람들입니다. 잘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못난 사람들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힘센 사람들이 아닙니다. 힘이 약한 사람들입니다. 돈 많은 부자가 아닙니다. 가난한 자들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뭔가 있어 보이나요? 그럼 조심해야 합니다. 복음을 훼방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스스로 보기에도 정말 못나 보이시나요? 그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언제인지, 어떤 상황일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재림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30절에서 사도 바울은‘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그런 사도 바울에게 예수님께서는‘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말씀하셨습니다. 강한 자들은 자기 능력을 자랑하다 넘어집니다. 반면에 약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십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우리도 약한 것을 자랑하는 그래서 나귀처럼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쓰임받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 150장(갈보리산 위에)
주기도문
기도제목
1. 나를 자랑하는 교만을 버리고 철저히 나를 낮추는 겸손이 있도록 기도합시다.
2.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을 깨닫고 약한 것에 감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3. 부족한 나를 들어 쓰실 때, 자원하며 헌신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4. 배윤순장로님, 조순옥전도사님, 서문재안수집사님, 김은경집사님, 주님의교회 박미선사모님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구인회집사님께서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또한 아픈 분들이 회복되어 다시 함께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5. 몽골선한이웃교회, 백암전원교회, 디딤교회, 주님의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6. 가정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물질에 어려움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7. 자녀들이 학교에서 믿는 자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전도할 수 있도록, 그로 인해 주일학교가 부흥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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