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충민형제의 글, 회사에서 일어났던 글을 읽고 댓글을 쓰려다 잠시 멈췄습니다.
댓글을 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충민형제가 현재 겪고 있는 일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오늘 새벽에 충민형제를 위해서 기도하고 댓글이 아닌 대흥의 청년들이 다 함께 보기를 원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 말씀대로 늘 사랑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때로 잘못 적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마치 모든 악을 다 덮어두고 관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사랑은 공의와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사람의 잘못을 덮어두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을 덮어두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더 악해지도록 방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악을 행해야지만 승리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어 공동체 전체를 잘못된 길로 이끌게 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을 또다른 악인으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악을 관용하는 것은 공의롭지 않기에 사랑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악이 승리한다고 믿고, 악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을 처세의 방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사도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고 말씀합니다. 기독청년들은 이 세대의 악과 또 그 악을 관용하는 비겁함을 본받아서는 안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떤 불의나 부정과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타협이 성공의 엘리베이터라도 해도 타협하기보다 묵묵히 진리의 계단을 걸어 올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삶은 단지 멋진 삶, 겉멋만 아는 낭만적인 삶이 아닙니다. 분명한 손해를 감수하는 삶입니다. 그러기에 결국 내 삶의 '인사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입니다.
물론 저는 충민형제에게도, 그리고 다른 청년들에게도 그들이 진리를 향해 기꺼이 손해보는 삶을 살 때 현실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기도할 뿐이며, 또한 목사로서 먼저 그 길을, 진리를 위해 기꺼이 손해보는 삶을 걸어갈 뿐입니다.
폭풍 속에서도 평안한 잠을 주무셨던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제자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쳤지만 우리 주님은 조금도 요동치 않으셨습니다. 상황은 우리를 흔들 수 있지만, 넘어뜨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평안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충민형제에게 있는 평안함은 지금 걸어가는 그 길, 충민형제가 선택한 그 길이 옳은 길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진리 안에 거하는 자에게 자유함이 평안함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충민형제에게, 그리고 대흥의 모든 청년들에게 있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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