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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9일 주일/가정 예배모범
운영자 2026-04-18 추천 0 댓글 0 조회 4

2026419일 대흥교회 주일/가정예배

 

1. 회개기도 -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지기를 기도합시다.

2. 사도신경 고백

3. 찬송 46(이 날은 주님 정하신)

4. 말씀읽기 - 사도행전 13:49-51

5. 설교

 

제목 : 품어 안으십시오.

 

유대인들은 말씀을 반박하고 비방한 반면 이방인들은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방인들 중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회당 앞에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49절 말씀에 나온 것처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습니다. 살아 있고 운동력 있는 능력의 말씀이 비시디아 안디옥을 충만하게 채웠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의 시기심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말씀이 전파되는 것, 그들이 유명해지는 것 그래서 자신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이것을 질투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질투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에게는 발동되지 않을 때가 많다고 합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질투가 생기게 된다고 합니다. 나와 비슷한 데, 그 사람이 더 주목받고 높아지기 시작하면 질투라는 감정이 솟구쳐 오르게 됩니다. 문제는 질투가 생기게 되면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죽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왜곡과 오판이 만들어집니다. 철학자 니체는 질투에 대해서 인간의 가장 추한 본능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의 성공을 시기하고 깎아내리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남에 대한 질투는 결국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남을 질투하다 내가 죽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질투에 눈이 먼 유대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경건한 귀부인들과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했습니다. 경건한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은 모두 이방인이었습니다.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타락한 백성,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지역을 다녀오고 나면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렸습니다. 저주와 심판이 먼지에도 묻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경멸하던 이방인들 앞에 유대인들이 머리를 조아립니다. 이방인들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에 대한 질투가 유대인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쓴 방법이 바로 선동입니다. 선동은 사람들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의 법정 앞에 있을 때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선동했습니다. 부추겼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릴 어떤 죄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을 선통해서 소리를 높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민란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인 바라바와 예수 중에 누구를 풀어줄까 백성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답이 정해져 있는 쉬운 문제였습니다. 바라바는 살인범이었습니다. 그런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질투에 선동된 백성들은 이성이 마비되었습니다.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냥 예수가 싫은 거였죠. 그래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쳤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똑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죄를 지은 것이 있나요? 도둑질했나요? 사람을 죽였나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 질투에 눈먼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력한 자들을 선동했습니다. 막무가내였죠.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그 성에서 쫓아냈습니다.

동일한 패턴입니다. 예수님을 죽일 때 사용했던 패턴이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낼 때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죠. 지금도 이 패턴은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정치권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정치의 목적은 권력을 잡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말합니다. 왜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가? 더 큰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권력에 맛이 들면 그 권력 때문에 자식도 죽이는 비참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권력자들은 경쟁자가 나타나면, 자신보다 더 인기가 많은 사람이 등장하면 질투에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최후의 목적은 죽이는 것, 쫓아내는 것입니다. 질투, 선동, 쫓아냄의 패턴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런 패턴에 대해서 니체는 질투는 마침내 전갈처럼 독이 있는 꼬리로 자신을 되찌른다고 말을 했습니다. 남을 죽이느라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지 못하니 결국 자신이 파멸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51절에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을 발로 찬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에게 돈을 요구했나요? 복종을 요구했나요? 복음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네비게이션을 선물로 줬습니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영생의 길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런데 질투 때문에 선동하여 쫓아냈습니다. 그럴 때 바울과 바나바는 발의 티끌을 떨어 버렸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발의 티끌을 떨어 버렸다는 것은 더 이상 관계가 없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뜻이죠.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을 내쫓은 유대인들을 영적인 이방인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014절과 15절에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말씀하셨습니다.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을 심판과 연결시킨 것입니다. 독이 있는 꼬리로 자신을 찌르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쫓아내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밀어내는 사람입니다. 저 사람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이웃을 향해 떠나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심은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 심판이 결국 나에게 임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31절과 2절 말씀은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대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것입니다. 함께 있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천사들을 영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죠? 아브라함입니다. 나그네가 왔을 때 그들을 쫓아내지 않고 영접했습니다. 맞아 들였습니다. 그럴 때 천사들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접을 받는 복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믿는 자들은 기쁨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럴 때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영접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천사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보이시나요? 물론 관계가 꼬여서 어떻게 저 사람이 천사야! 라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거 내 생각이죠! 내가 미워해서 쫓아낸 사람, 공동체 안에서 떠나기를 바라는 그 사람이 천사일 수 있습니다. 천사를 내어 쫓고 내가 온전할 수가 있나요? 내어 쫓으면 결국 내가 내어 쫓기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요한3서에서 사도 요한은 가이오 장로에게 나의 사랑하는 가이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했습니다. 이렇게 가이오가 사랑받은 이유는 요한315절에 나온 것처럼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 때문입니다. 영접했습니다. 맞아 들였습니다. 그럴 때 가이오도 사랑받고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맞아 들이는 자들에게 부어지는 복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품어야 합니다. 그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있어도 용납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영혼이 잘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 범사가 잘 되고 육체가 강건해지는 비결입니다.

반면에 요한39절에는 디오드레베에 관한 저주도 나와 있습니다. 그는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질투하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맞아들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악한 말로 비방을 하고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않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았습니다. 그럴 때 요한 사도는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심판을 선고했습니다. 쫓아내는 사람, 또한 사람들을 선동하여 쫓아내는 데 동참시키는 사람은 하나님을 뵈옵지 못합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됩니다. 쫓아냈으니 하나님께서 쫓아내시는 것입니다.

성도란 품어 안는 사람입니다. 질투하지 않고 높여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디베랴 바닷가에서 만나시고 그에게 떡과 고기를 구워 주셨습니다.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영접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책망도 없이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것만 물으셨습니다. 그럴 때 배신자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품어 안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이기에 질투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리해야죠. 선동하시면 안 됩니다. 특히 사람을 쫓아내기 위해서 선동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다른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심은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품어 안으십시오. 그럴 때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찬송 : 452(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주기도문

 

기도제목

1. 질투하지 않도록, 인정하고 용납하고 받아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 품어 안아 주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3. 심은대로 거둔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선한 것을 심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4. 배윤순장로님, 조순옥전도사님, 서문재안수집사님, 김은경집사님, 주님의교회 박미선사모님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구인회집사님께서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또한 아픈 분들이 회복되어 다시 함께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5. 몽골선한이웃교회, 백암전원교회, 디딤교회, 주님의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6. 가정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물질에 어려움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7. 자녀들이 학교에서 믿는 자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전도할 수 있도록, 그로 인해 주일학교가 부흥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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