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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2일 주일/가정 예배모범
운영자 2026-04-11 추천 0 댓글 0 조회 9

2026412일 대흥교회 주일/가정예배

 

1. 회개기도 -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지기를 기도합시다.

2. 사도신경 고백

3. 찬송 44(지난 이레 동안에)

4. 말씀읽기 - 사도행전 13:46-48

5. 설교

 

제목 : 말씀에 대한 태도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 앞에 안식일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둘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44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인 사람들입니다. 다른 부류는 45절에 나왔듯이 말씀을 반박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방인이었습니다. 말씀을 반박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죠. 말씀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이방인들에게 전달되었죠. 그럴 때 이방인들은 그 말씀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듣고 싶어 했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이 이뤄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바울과 바나바는 46절에 담대히 말하였습니다. 담대히 말한다는 것은 이제 확실히 알았다는 뜻입니다. 아리까리한 것이 아니예요.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니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분명해졌을까요? 바로 말씀과 구원의 관계입니다. 말씀에 대한 태도와 영생의 관계성을 인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담대히 말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재판선고와 같습니다. 선고가 있기 전에는 모든 것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검사의 말도 들어보고 변호사의 말도 들어봐야 합니다. 증인신문을 합니다. 실체가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함입니다. 그러다 실체가 명확해지면 주저하지 않고 담대히 판결을 내립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막 선교의 초창기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잘 알았습니다. 성령께서 자신과 바나바를 택하여 선교를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과 바나바는 뼛속까지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도 다윗의 후손으로, 유대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성경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의 구원이 먼저였습니다. 당연히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고 그들이 들어야 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간 것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을 향한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46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라고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먼저 전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비방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로 방향을 틀었는 데 이방인들은 말씀을 기쁨으로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며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는 지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입니다. 들을 귀가 유대인들에게는 없고 이방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방향성이 있습니다. 구원받을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 중에 택함을 받은 자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이방인 중에는 택함을 받은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면서 말씀과 영생을 연결시킵니다. 46절에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말씀이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버렸습니다. 가지고 있지 않고 쓰레기 처리한 것입니다. 말씀을 버리는 모습을 사도 바울은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서 영생을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이다! 영생 필요없다! 말했습니다. 아니 언제 우리가 그렇게 말했어?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말씀을 버린 것입니다. 말씀으로 구원을 얻는 데 그 말씀을 버렸습니다.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구명환을 던졌는 데 그 구명환을 받고도 멀리 던져 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나 살고 싶어!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살고 싶다면 구명환을 붙잡아야 합니다. 버리고 살고 싶다 말하면 안 되죠. 그럴 때 사람들은 분명히 압니다.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구나!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먼저 말씀을 받고도 그 말씀을 버린 것을 통해서 그들에게 더 이상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미련 둘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안타까운 마음은 있죠. 하지만 안 될 일에 힘쓸 것이 무엇인가요? 포기할 때는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담대히 말한 것입니다. 너희에게 더 이상 미련두지 않을 거야. 말씀을 버렸기에 너희에게 구원은 없어!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럴 때 이방인들은 48절에 나온 것처럼 듣고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 중에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들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방인들은 구명환을 받았을 때 감사하며 그 구명환을 붙잡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살고 싶다고 말한 것을 구명환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살게 됩니다. 구명환은 넉넉합니다. 그러나 두 손 들고 구명환을 달라고 외치는 자들에게 던져줄 뿐입니다. 외면하고 다른 곳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던져 봐야 소용이 없으니까요.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이 말씀 때문에 기뻐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구원받은 증거임을 깨달았죠. 그래서 담대히 이방인의 구원을 선포한 것입니다.

구원은 외적인 조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인 조건이라고 하면 마땅히 유대인들이 먼저 구원받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은 구원받지 못해야죠. 그러나 외적인 조건으로 구원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부정됩니다. 마땅히 하나님이 공정해야 합니다. 공의로와야 합니다. 외적인 조건으로 구원하는 것은 불공평합니다. 공의롭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외적인 조건으로 구원받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말씀을 듣는 태도, 말씀을 대하는 태도로 그 사람의 구원을 말하게 됩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말을 듣는 태도로 그 사람의 운명이 바뀔 수 있습니다. 거창하게 세상이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들은 누구 말 잘 들어야죠? 그렇습니다. 아내 말입니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들으면 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듣지 않고 제 멋대로 하면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빠지게 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물론 잔소리입니다. 듣기 싫죠. 그러나 부모의 말을 잘 듣게 되면 그로 인해 손해볼 것이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요즘 가정이나 부부의 문제로 인한 프로그램들이 참 많습니다. 다양한 사연들이 있죠. 그런데 그 모든 갈등과 문제의 공통점은 들을 귀가 닫혀 있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주장만 맞다는 거예요. 나만 옳다는 거예요. 그럴 때 반드시 다툼과 싸움이 생겨나게 됩니다. 다툼과 싸움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풀어가려면 풀리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이 옳게 여겨집니다. 문제는 항상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죠. 그러니 상대방이 변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상대방도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싸움이 멈추지 않죠. 싸움을 멈추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으로 따지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듣고 있는가? 들을 귀가 있는가? 이것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듣고 있는가? 제대로 듣는다면 오늘 본문에 나온 이방인들처럼 듣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게 듣는 거죠. 그래! 나 다 들었어! 그리고 난 뒤에 내 주장을 고집하면 들은 말씀을 버리는 것입니다. 듣기를 좋아하고 들은 말씀대로 나를 바꾸는 모습이 있어야 제대로 들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나요? 유대인인가요? 이방인인가요? 말씀을 듣고 버리는 사람들입니까?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입니까? 중요한 문제죠! 바울과 바나바는 더 이상 어정쩡한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담대히 말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버리는 사람들, 즉 말씀을 기뻐하지 않고 그 말씀을 버리는 사람, 즉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찬송하는 사람들, 즉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교회를 몇 년 다녔는 데, 내가 목사이고 장로인데, 내가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헌신했는 데, 이런 외적인 조건으로 구원을 주장하지 마세요. 그거 아닙니다. 말씀에 대한 태도입니다. 무엇보다 순종입니다. 더 이상 이런 어리석은 말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구원받았고 확실히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순종은 어렵네요. 못하고 있어요. 아무말대잔치입니다.그럴 수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 천국의 시민권, 함부로 이야기할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가 증명해 보여 줍니다. 다시 한 번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를 점검해 봐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열심이 내게 있다면 천국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천국의 기쁨을 누리시는 대흥의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송 : 446(주 음성 외에는)

 

주기도문

 

기도제목

1. 외적인 조건으로 구원을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버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 말씀을 사모하며 순종하는 것으로 구원의 증거를 제시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3. 온전한 사랑으로 순종을 보여주며 마라나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4. 배윤순장로님, 조순옥전도사님, 서문재안수집사님, 김은경집사님, 주님의교회 박미선사모님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구인회집사님께서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또한 아픈 분들이 회복되어 다시 함께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5. 몽골선한이웃교회, 백암전원교회, 디딤교회, 주님의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6. 가정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물질에 어려움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7. 자녀들이 학교에서 믿는 자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전도할 수 있도록, 그로 인해 주일학교가 부흥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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