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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5일 주일/가정 예배모범
운영자 2026-04-04 추천 0 댓글 0 조회 14

202645일 대흥교회 주일/가정예배

 

1. 회개기도 -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지기를 기도합시다.

2. 사도신경 고백

3. 찬송 165(주님께 영광)

4. 말씀읽기 - 요한복음 20:26-29

5. 설교

 

제목 : 도마도 부활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사도를 세우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사도의 자격을 박탈 당했습니다. 그 빈 자리를 채운 사도가 맛디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맛디아의 사도 자격을 부정하고 사도 바울이 열 두 번째 사도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목숨 걸고 싸울 진리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승 또는 전설에 의하면 열 두 사도 모두 순교했다고 합니다. 2천년 전 이야기이니까 전설로 불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순교한 열 두 사도 중에 세 명의 사도가 카톨릭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누구일까요? 첫째로는 베드로입니다. 로마에 성베드로 대성당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영어로 피터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로는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로 유명합니다. 그렇다면 산티아고에는 누가 묻혀 있을까요? 산티아고에서 산은 성인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세인트죠. 성 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누가 티아고일까요? 야고보입니다. 야고보를 라틴어로 발음하면 이아고가 됩니다. 스페인어로 성인 즉 세인트는 산토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산토 이아고가 되고 붙여서 산티아고가 됩니다. 스페인에서 흔한 이름인 디에고가 바로 야고보를 의미합니다. 왕년에 유명한 축구선수인 마라도나도 디에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샌디에이고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김하성 선수가 뛰었던 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대성당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시아에 있습니다. 그것도 인도에 있습니다. 인도 첸나이에 있는 성토마스 대성당입니다. 예전에 전용일목사님이 인도 첸나이에서 선교하실 때 가 본 적이 있습니다. 힌두교로 가득한 인도에 토마스, 즉 도마의 순교지가 있습니다.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 창에 찔려 죽은 그 위치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 도마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도마입니다. 흔히 말하는 의심많은 도마입니다. 의심이 많다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뜻입니다. 무턱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의심해 보고 그것이 확실해야 믿는 지성적인 사람이 도마였습니다.

오늘 말씀 21절을 보면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라고 했습니다. 디두모는 헬라어로 쌍둥이를 의미합니다. 도마는 쌍둥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4절에 예수님께서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 말씀의 의미를 잘 몰랐죠.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는 척합니다. 물어보면 무식한 게 탄로가 나니까 모르면서도 아는 척합니다. 그러나 도마는 그러지 않았습니다.‘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말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지적인 면모를 도마는 보여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실 때에 도마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도마에게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전해줬습니다. 지성적인 도마는 25절처럼 말합니다.‘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할 것이다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겁니다. 아니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날 수 있어? 내가 두 눈으로 예수님 손에 못이 박힌 것과 허리가 창에 찔린 것을 보았어. 너희도 봤잖아. 정말 죽은 것을 확인했잖아. 그럼 끝이야!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난 못 믿어. 부활은 없어!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봤습니다.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다른 영역입니다. 죽음은 모든 능력을 소멸합니다. 모든 기적도 사라지게 만듭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죠.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을 도마도 봤을 거예요. 그런데 그건 나사로가 죽은 겁니다. 예수님이 살리셨어요. 살아 있을 때 능력을 행하신 것입니다. 죽으면 능력도 다 사라집니다. 또 다른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한 예수님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도마의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8일 후에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말씀해 주셨습니다.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환상이나 홀로그램이 아니라 정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인하고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이란 영과 육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영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육은 죽죠! 그러기에 영원히 살아 있는 영에 부활을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부활은 육체의 부활입니다. 그래서 만져볼 수 있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떡과 물고기를 드셨습니다. 몸이 부활한 것이기에 부활한 사람들도 먹을 것을 먹습니다.

물론 예수님처럼 죽을 때 그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들은 그 끔찍한 모습으로 부활할 거잖아요. 사도 바울은 부활에 대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알려줍니다. 1535절에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어떠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인가? 그 시대에도 궁금했습니다. 그럴 때 37절에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라고 말씀합니다. 사과나무를 통째로 심고 그 사과나무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땅에서 나와 분재처럼 작게 있다가 점점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은 뒤에 싹이 나오고 나무로 자라는 것입니다. 부활도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씨앗과 나무처럼 전혀 이질적인 것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죽을 때 모습이 아닌 좋은 모습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손에 못자국과 옆구리에 창자국을 그대로 지닌 채 부활하신 이유는 그래야 예수님인 줄 믿어주기 때문입니다. 채찍에 맞고 찢겨진 부분들은 온전하게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에 난 못자국과 허리에 난 창자국을 보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는 완벽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는 죽은 자의 부활을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죽은 예수님이 실제로 육체로 부활하여서 자신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믿어야죠. 부활을 믿어야죠. 모든 과학과 논리는 실체를 탐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과학과 논리로 없는 실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실체를 연구하며 과학과 논리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체가 부활이라면요. 그것을 믿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입니다. 신이시기에 능치 못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의심 많은 자였습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도마였습니다.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도마는 인도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순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는 데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이유가 없잖아요. 부활을 부정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믿는 겁니다. 살아 있는 인생이 전부인 거죠. 그렇다면 남을 위해서 살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가장 소중한 거예요. 순교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다면 이 세상은 군대와도 같습니다. 군대 안에서도 이런 저런 삶의 재미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은 제대를 꿈꾸죠. 제대한 뒤에 진짜 인생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군에서의 모든 시간들도 제대한 이후를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요즘 군대 가면 군적금이 있습니다. 16개월 모으면 2천만원 정도 모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적금으로 돈을 모으죠? 제대가 있으니까요. 제대라는 게 없으면요. 적금을 왜 모읍니까. 다 써야죠.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고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믿는 사람.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죽고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거예요. 믿는다고 말만할 뿐이거나 믿는다고 착각할 뿐이죠.

그럼 부활은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도마도 믿었습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2천년 전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 바보 아닙니다. 그 때의 학문도 대단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때의 학문을 배우고 있잖아요. 도마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의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실체가 없으면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도마가 믿었습니다. 부활이라는 실체를 봤기 때문이죠. 그래서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할 수 있겠다! 그러니 이 땅에 올인하지 않는 거예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올인합니다. 이 세상에 올인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것에서만 희로애락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말합니다. 살아 있는 삶의 재미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저승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경험하고 비교해서 이승이 좋다고 해야 하는 데, 그냥 이승에만 있다보니 이승의 재미에 푹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승이 좋을까요? 이 치열한 경쟁사회, 계급사회, 폭력과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 정말 좋나요? 물론 삶의 소소한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는 것은 결국 허무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고백한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올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는 거예요. 제대하고 만날 여자 친구랑 재밌는 삶이 있다면 군대에서 죽기 살기로 군생활 하지 않을 거예요. 다치지 않게 적당하게 시간을 때우는 것이죠. 부활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손해 봐도 문제 없습니다. 다투고 싸울 것도 없어요. 양보하면 됩니다. 나눠주면 됩니다. 부활이 있으니까요. 그런 삶이 얼마나 재밌겠습니까! 부활을 믿는 사람들만이 이 봄의 꽃을 즐길 수 있습니다.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다투고 싸우고 빼앗고 뺏기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 세상이 전부이고 죽음으로 끝난다고 믿는 거예요. 그렇게 한 번 뿐인 인생이니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이겨야 하니까요, 우리는 그러지 맙시다. 이 세상 제대하면, 부활과 영생이 있습니다. 진짜 삶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것을 믿고 넉넉하게 여유롭게 그리고 따뜻하게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송 : 162(부활하신 구세주)

 

주기도문

 

기도제목

1. 부활의 실체 앞에 이성과 논리를 내려놓고 믿음을 고백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 이 땅에 올인하지 않고 넉넉하고 여유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3. 부활을 믿으며 이웃들을 사랑하고 내 것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4. 배윤순장로님, 조순옥전도사님, 서문재안수집사님, 김은경집사님, 주님의교회 박미선사모님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구인회집사님께서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또한 아픈 분들이 회복되어 다시 함께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5. 몽골선한이웃교회, 백암전원교회, 디딤교회, 주님의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6. 가정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물질에 어려움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7. 자녀들이 학교에서 믿는 자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전도할 수 있도록, 그로 인해 주일학교가 부흥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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