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0일 대흥교회 주일/가정예배
1. 회개기도 -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지기를 기도합시다.
2. 사도신경 고백
3. 찬송 – 64장(기뻐하며 경배하세)
4. 말씀읽기 - 사도행전 13:2-3
5. 설교
제목 :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 지고
새 시대의 중심지인 안디옥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리더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용납하고 품어주는 것을 통해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주를 섬겨 금식했습니다. 주를 섬긴다는 것은 제사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예배에 힘썼다는 뜻입니다. 주를 섬기는 일, 예배에 힘을 쓰면서 그들은 금식했습니다. 금식을 한 이유는 교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금식이란 밥을 먹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냥 밥 안 먹으면 다이어트죠. 금식은 밥을 굶으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삶의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이런 욕구를 억제한다는 것은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나를 철저히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금식입니다. 교회의 방향성을 고민할 때 안디옥 교회는 갑론을박하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금식했습니다. 철저히 자기 생각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실 것인지 기다렸습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금식하는 안디옥 교회에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건강하게 세워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안정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도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도들도 늘어나고 교회의 재정도 늘어날 것이 뻔합니다. 이럴 때 어떤 공동체이건 안주하기 쉽습니다. 만약 금식하지 않고 교회의 리더들이 교회의 방향성을 결정했다면 교제를 중심으로 안주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금식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도전을 명령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도 복음을 듣고 세워진 교회입니다. 복음에 빚진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빚은 갚아야 마땅하잖아요! 당시 세상에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안디옥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분명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사람의 계산이 아니라 금식하며 철저히 자신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선교라는 사명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선교의 사명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나바가 누구입니까? 안디옥 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사울은요? 바나바의 동역자이며 후계자이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핵심적인 일꾼들입니다.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교회는 술렁거렸을 것입니다.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라는 명령에 있습니다. 교회의 담임목사들입니다. 교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앞서 1절에 언급된 것처럼 다른 선지자들과 교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 두 명을 지명했으면 교회는 흔쾌히 파송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나바와 바울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기둥과 같은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안디옥 교회를 떠나게 되면 교회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일단 아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3절에 나온 것처럼 다시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교회에 묶어 두려는 것이 그들의 욕심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내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기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한 뒤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기도할 때 분명한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안디옥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셔서 교회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인이라 불려지게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시려고 합니다. 만약 순종하지 않으면 바나바와 사울도 시험에 들고 교회도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께 바나바와 사울의 빈자리를 채우실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버리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죠! 이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교회를 온전히 세우실 것이다. 금식하며 기도할 때 인간의 생각은 철저히 내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을 들으신 뒤 예수님은 이 믿음의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뒤 이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고난당하시다 죽임을 당하시고 제3일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소리 질렀습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주님이 왜 고난을 당하셔야 하는가! 왜 죽임 당하셔야 하는가! 내가 막아서겠다!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에 조금도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고난당하고 죽으시려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장면이죠. 내가 주님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려는 것이 사탄의 유혹에 빠진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뭐지? 혼란스러울 거예요.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보내려고 할 때 안 됩니다. 안디옥 교회를 지켜야죠! 제가 못 가게 막겠습니다! 바로 이 문제인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해석해 주신 것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막는 것이 주님을 위한 일처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일 뿐입니다. 철저히 금식하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니 자기 생각이 나오게 된 거죠. 그러면서도 자기 생각이 진리라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있었던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길을 막으면 그게 악한 거죠. 마음 아파도 막을 수 없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를 떠나는 것이 마음 아파도 막을 수 없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교회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여 보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신 이후에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는 자, 자기 생각을 부정하는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 오직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으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그게 진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것이죠.
구약시대의 요나가 그랬습니다.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보다 자기 생각이 앞섰습니다. 니느웨는 악한 성읍이니까, 조국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니까 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억지로 그를 니느웨로 다시 보냈을 때에도 니느웨가 회개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망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은 두 번이나 물으십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니 생각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한 뜻이니 그 뜻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옳게 보여도 그것은 틀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요나처럼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금식하며, 철저히 나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베드로를 책망할 만큼 사명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있으셨던 예수님이시지만 고난당하시기 전날 겟세마네에서 할 수만 있거든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 기도하셨습니다. 솔직한 마음이죠. 고난과 십자가를 지는 것이 당연한 사명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울까요? 아닙니다.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내 생각과 내 뜻이 나오게 됩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땀구멍에서 핏방울이 스며 나오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금식기도보다 더한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의 목적은 자기 부인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철저히 지워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유혹하여 넘어뜨린 사탄이 예수님도 강하게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잘 아셨습니다. 그것을 이기기 위해 자기 부인의 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고백이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욕심이 진리라는 포장지를 두른 채 내 앞에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생각이 옳은 것처럼 보입니다. 베드로처럼, 요나처럼.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하라고 했을 때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처럼. 이럴 때에는 판단을 미뤄야 합니다. 그리고 금식해야 합니다. 철저히 나 자신을 부정해야 합니다. 내 생각을 다 지워버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기도해야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으면 그 뜻에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여 파송했던 것처럼 정말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밖에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금식하며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한 뒤에도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길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유다가 멸망한 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세운 그댜라 총독이 암살당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우리가 여기 그냥 남아 있어야 하는 지 애굽으로 도피해야 하는 지 하나님께 물으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대로 우리가 순종하겠다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기도한 뒤에 애굽으로 가지 말고 유대에 머물러 있으라는 답을 주었습니다. 그 때 무슨 말씀이건 순종하겠다고 말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말을 뒤집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리가 없다! 그러면서 애굽으로 갔습니다. 가서 다 죽었죠!
이런 어리석음이 없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고 내 생각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기도한 뒤에도 여전히 내 생각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철저히 나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내 생각을 지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때로는 받아들이기 정말 어려운 말씀이어도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놀라운 복과 은혜가 우리에게 넘쳐날 줄로 믿습니다.
찬송 : 341장(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기도문
기도제목
1. 철저히 내 생각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 아무리 내가 옳게 보여도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3.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의를 이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4. 배윤순장로님, 조순옥전도사님, 서문재안수집사님, 김은경집사님, 주님의교회 박미선사모님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구인회집사님께서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또한 아픈 분들이 회복되어 다시 함께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5. 몽골선한이웃교회, 백암전원교회, 디딤교회, 주님의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6. 가정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물질에 어려움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7. 자녀들이 학교에서 믿는 자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전도할 수 있도록, 그로 인해 주일학교가 부흥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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