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에 헌신(사도행전 13:4-5)
하나님께서는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셨습니다. 사명을 주신 것이죠. 이 사명에 바나바아 사울은 헌신으로 답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구브로섬으로 가서 살라미라는 도시에 있는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습니다.
이 말씀은 헌신에 관한 중요한 팁을 던져줍니다. 그것은 익숙한 것, 잘 할 줄 아는 것에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습니다. 잘 알고 있는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그 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의 조카이자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에서 함께 동역했던 마가 요한을 수행원으로 삼았습니다.
이 익숙함이 헌신의 중요한 요건이 됩니다. 어떤 헌신이건 내가 익숙한, 즉 잘 하는 것에 헌신해야 합니다. 잘 하지 못하는 것에 헌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헌신은 달란트에 맞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교회에서 강제로 헌신을 시키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달란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잘 할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알죠! 내가 뭘 잘 하는 지! 뭘 좋아 하는 지. 익숙하고 잘 아는 것이 내가 헌신을 해야 할 사명입니다.
모세와 바울이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식층으로서 정리하고 기록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사도 바울에게 성경을 기록하는 일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기록하라 했으면 오류투성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체계적으로 학문을 배운 사람들이었기에 모세는 율법을 기록했고 사도 바울은 구약과 신약을 통합하면서 이신칭의의 교리를 세워나갔습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익수한 일에 헌신했던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 갑옷을 입고 가야 하는 데 그 갑옷이 다윗에게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칼과 창도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무기라 할지라도 익숙하지 않으면 써 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평상시 익숙하게 사용했던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과 싸우러 갔습니다. 그리고 그 물매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이것이 헌신의 원리입니다. 익숙한 것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헌신할 수 있는 분야는 정말 많습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익숙한 것, 가장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음식, 청소, 돈,, 찬양, 기도, 교사, 운전 등 내가 잘 하는 것, 익숙한 것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물론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잘 하고 익숙한 것에서 착각이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잘하고 익숙하다고 해서 그것이 다 헌신의 목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이 인정해 줘야 합니다. 정말 잘 한다고 말해 줄 때, 동시에 내가 그것을 좋아할 때 그것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억지로 헌신을 시키게 되면 나도 시험에 들게 되고 공동체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많은 교회에서는 복을 미끼로 억지로 헌신하게 합니다. 몇몇 분야를 정해 놓고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헌신의 분야는 다양합니다. 잘 못하는 데 복 받기 위해 억지로 헌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작은 헌신이라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익숙한 헌신을 하면 됩니다. 자발적으로 헌신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억지로 헌신을 강요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마땅히 헌신할 수 있음에도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처럼 80년이나 준비되었음에도 출애굽의 사명을 부여받을 때 강하게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익숙하고 잘 하는 것이 있음에도 그저 하기 싫어서 헌신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잘 알지 못해서 헌신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할 수 있음에도 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헌신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물질이 있는 데도 물질로 헌신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있는 데도 시간을 헌신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데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요리로, 청소로, 다양한 방식으로 헌신할 수 있음에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헌신의 자리를 피합니다. 우리의 마음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속아 넘어가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죠. 헌신은 모든 성도들의 것입니다. 빠질 수 없습니다. 빠지면 안 됩니다. 내가 무엇으로 헌신할 수 있을까? 찾아보시고 그것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익숙한 일에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헌신하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복이 충만히 임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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